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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비탈을 넘어 훨훨~ 몰아의 세계로
관리자
2014-05-01 19:24:20
조회 : 1,974
1998년 봄.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 관계자가 한국 춤꾼을 행사에 초청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우리 측에서 제공한 여러 한국 춤을 관람한 그들은 여태껏 봐 온 춤사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면서 초청의사를 안 밝혔다. 이 페스티벌은 프랑스 남부도시 아비뇽(Avignon)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연극축제다. 1947년 프랑스 연극계의 거장인 장 발라르가 연극의 지방화를 내세우고 교황청 뜰에서 개최한 예술제가 그 시작이다.
한국 연극계에서는 비장의 카드로 우봉(宇峰) 이매방(李梅芳·88) 인간문화재의 살풀이춤을 보여줬다. 이날 우봉은 구체적 실체는 없으나 인간에게 발생해 병·사건·불행 등의 형태로 감지되는 모든 살(煞)을 춤으로 풀어냈다. 그의 고운 손끝 맵시와 일(一)자로 종종 비켜 가는 버선코의 걸음걸이,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사무친 기다란 소매의 출렁이는 비상, 절제된 정·중·동의 움직임 속에 감지되는 기이한 기운.
아비뇽 참관자들은 넋을 빼앗겼다. “저게 사람이 추는 춤인가!” 그해 여름 우봉은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돼 한국 전통춤의 심오한 예술성과 우수성을 세계문화계에 널리 알렸다. 이후 우봉은 국무(國舞)로 불리면서 우리 전통문화계에 불멸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에 앞서 우봉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지정(1987. 7. 1)된 후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로도 중복 지정(1990. 10. 10)된 국내 유일의 인간문화재이기도 하다.
절제된 정·중·동…佛 아비뇽 축제 관객 탄성 부인 김명자 씨·딸 3대에 걸쳐 예맥 이어가
무심한 세월인가. 고령으로 쇠약해진 한국 최고의 춤꾼 우봉이 명예보유자로 인정(2013. 3. 12)되고 그의 승무와 살풀이춤 맥은 부인 소정(素靜) 김명자(明子·72) 전수조교와 외동딸 이현주(41) 이수자가 3대에 걸쳐 예맥을 잇고 있다. 우봉은 지난 4월 5일 88세의 미수연을 갖고 “모녀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내 춤을 그대로 빼닮아 아무 걱정이 없다”고 했다.
소정의 춤결은 우봉의 춤사위에 여성미가 가미돼 한층 애잔하다. 경남 의령군 의령면 중동 출신의 그녀가 우봉을 만나 40년 넘게 걸어온 예인의 일생은 “춤에 미쳐 산 세월이었다”고 회고한다. ‘스승으로서의 이매방’을 만나 육신에 녹아든 정한을 녹여 이름 모를 사람들의 살과 한까지 풀어줘 왔기 때문이다. 소정은 예술애호가였던 인천의 고모(김모란) 집에 머물며 인천여중·여고를 졸업했다. 이때 우리 전통춤과 음악의 대가였던 이동안(발탈 초대 인간문화재)·김천흥(종묘제례악 초대 인간문화재) 선생을 만나 예능을 배우고 가야금·양금 등의 악기는 이두칠 명인에게 익혔다. 우봉과의 결혼도 고모가 중매했다.
“살풀이춤은 단순히 살을 풀고 한을 삭이는 동작이 아니라 슬픔의 비탈을 넘어 몰아의 세계로 승화되는 영혼의 춤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빠져 몸이 이끄는 대로 수건을 뿌리다 보면 이전에 하지 않았던 몸짓이 저절로 솟구칩니다. 무엇에 홀린 듯 무아경지에서 춤출 때가 많아요.”
소정은 우봉을 이어 승무(1998. 6. 5)와 살풀이춤(2001. 10. 18)의 중복 전수조교로 지정돼 이매방춤보존회장과 (사)한국무용협회 부산부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매년 개최되는 명무전에서 우봉의 춤을 볼라치면 소정의 춤을 보면 된다.
민간신앙에서 살은 인간이 머무는 공간에 두루 존재하는 것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기로도 인식돼 왔다. ‘살이 꼈다’ ‘살이 붙었다’ ‘살을 맞았다’는 말로 표현하며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역마살도 이에 속한다. 살과 함께 한(恨)이 사무쳐 세상을 떠난 망자는 쉽게 저승에 들지 못하고 이승을 맴돈다 하여 진도 지역에선 씻김굿(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과 고풀이로 천도제의를 행한다.
살풀이춤은 수건춤·산조춤·허튼춤으로 불리던 여성홀춤으로 1903년 한국 전통춤의 비조 한성준(1875~1941)이 살풀이란 단어를 처음 쓴 데서 비롯됐다. 굿거리 시나위와 동살풀이 가락을 쓰며 의상은 흰 치마저고리에 쪽을 찌고 하얀 수건을 든다. 학계에서는 인간 감성을 고결한 춤사위로 표현하는 한국의 대표 춤으로, 예술적 가치가 큰 고전무용으로 평가하고 있다.
살풀이춤의 유파(流派)는 ▲이매방류(호남 전통교방무로 흥이 많고 춤 마디에 멋이 흐르며 즉흥성이 뛰어나다) ▲한명숙류(내딛는 춤사위가 품위 있고 정숙하다) ▲김숙자류(도살풀이춤·춤결이 연하고 섬세하며 양손에 가장 긴 수건을 들고 춘다)로 나뉜다. 이들 유파마다 예능보유자와 전수조교가 별도로 지정돼 있다. 경기·전북·대구에서도 현지 살풀이춤을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각기 다른 특성을 보존해 내고 있다.
“살풀이춤에서 무수한 점과 선을 그려냄은 원초적 살을 풀기 위한 몸부림이고, 여백 가운데 나타나는 미세한 흐느낌은 억울한 원혼을 달래기 위한 의식이지요. 가락의 흐름에 멈추었다가 터질 듯이 폭발하는 춤 동작은 슬픔을 내던지고 환희로 다가가려는 자아극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춤꾼들은 “하늘을 지향하는 서양의 발레와 달리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담고 있는 살풀이춤은 땅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발끝으로 서는 발레와 발뒤꿈치로 서는 살풀이춤 동작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춤엔 어깨를 들썩들썩하며 무릎을 굽혔다 펴는 굴신율동이 많아 ‘능청거린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특히 한복이 지닌 곡선미는 한국 여인의 한을 형상화해 정적의 분위기로 몰입시킨다.
극작가 차범석(1924~2006)은 ‘이매방춤화보집’에 다음과 같은 헌사를 썼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따지고 보면 먼지 같고 이슬 같은 것을/ 왜 우리는 그것들에 매여 사는지 모르겠소/ 우봉이 그것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지금 그 자리에 일어서도/ 우봉의 이름과 예술은 영원히 남을 건데 무슨 여한이 있겠소.’ 화보집에는 소정의 춤결도 곱게 녹아 있다.
“선생님은 항상 ‘춤은 곰삭은 묵은지의 깊은 맛을 내듯 춰야 한다’면서 지금도 손짓 발짓 하나를 지켜보십니다. 분장하는데도 쪽찌고 꽂이 꽂는 법에서 아얌이나 남바위 쓰는 일까지 일일이 챙겨 주세요.”
이 부부가 외길 춤꾼으로 일생을 살면서 우리 전통문화 발전과 후진 양성에 기여한 공로는 부산시 눌원문화상·한국예총 예술문화대상·성옥문화상 수상과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의 서훈으로 돌아왔다. 각 대학에 출강해 전통춤을 전수시켰고 수많은 해외공연 현장에서는 한국문화의 우월성을 널리 홍보했다.
현재 이매방춤보존회와 전수활동을 통해 형성된 살풀이춤의 후계 맥은 탄탄하다.
<이규원 시인·‘조선왕릉실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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